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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의 부흥운동

현대 오순절 운동의 선구자들로는 적어도 19세기의 두 가지 부흥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 부흥 운동은 1830년의 영국에서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의 사역을 통해 일어났으며, 둘째 부흥 운동은 1860년의 인도 남단에서 플리머스 동포(Plymouth Brethren) 신학의 영향을 받아 아로올라펜(J. C. Aroolapen)이라는 인도(印度) 성직자의 지도 아래 일어나게 되었다. 이 두 가지의 사건에 대한 보고서에는 방언과 예언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은사가 사도시대와 함께 필연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는 일부의 신념은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가 그의 저서 "Counterfeit Miracles"(1918)에서 "성령의 영감을 받아 객관적으로 기록된 성경의 권위가 성령에 대한 주관적 개념을 가르치는 사람들로 인해 손상되었다."라는 말로 표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최근에 들어 개신교권에서 점차 그 기반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에서의 웨슬리 부흥운동

17세기 말과 18세기에 유럽과 북미에서의 불어닥친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칼빈주의자와 루터교파 그리고 아르미니우스파의 설교자들은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서 특별히 회개와 경건을 강조하였다. 현대 오순절운동은 이 시기에 일어난 영적운동의 연장선상(延長線上)에 있다. 특히 감리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존 웨슬리(John Wesley)와 그의 동역자인 존 플레처(John Fletcher)가 가르친 '그리스도인의 완전함'(Christian Perfection)에 대한 교리에 주목해야 한다. 웨슬리는 1760년 그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에 관한 소고(A Short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에서 그의 제자들이 삶 속에서 '영적인 새로운 차원'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은혜의 역사는 회개와는 별도의 '이차적(二次的)'인 것으로서 죄의 행위를 일으키는 도덕적 연약함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준다고 하였다.

미국에서의 성결운동

그의 가르침은 미국으로 확산되어 성결운동(聖潔運動)(Holiness Movement)이 성장하도록 영향을 끼쳤다. 성화된 삶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성경에서 유래된 오순절의 모습들, 예를 들면 '성령을 부어주심', '성령세례', '불의 혀'라는 단어가 성결문학과 찬송의 주제가 되었다. 감리교인으로서 웨슬리 진영의 성결운동의 최고지도자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피비 파머(Phoebe Palmer)는 '성결에로의 인도(Guide to Holiness)'를 편집하였고, '아버지의 약속(The Promise of the Father)'등과 같은 책을 1859년에 저술하였다. 또 다른 저명한 작가였던 윌리엄 아서(William Arthur)는 1856년에 베스트셀러 「불의 혀(Tongue of Fire)」를 남기게 되었다. '두번째 축복(second blessing)' 즉 성령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留)하라"(눅 24:49)는 말씀대로 '새로운 능력을 대망(待望)하며' 그것을 '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하며' 그것을 '받지 못하면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고 믿는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본래적으로 갖고 태어난 죄의 권세를 부수며, 성령충만한 삶으로 인도해 준다. 구약의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이 부어질 때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하게 될'(욜 2:28)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챨스 피니와 드와이트 무디 그리고 R. A. 토레이

은혜의 이차적(二次的)인 역사에 대한 믿음이 감리교권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는 "성령세례가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의 부여"라고 믿었다. 비록 역사적으로 개혁교회가 성령세례를 개종과 동일시(同一視) 해왔다 하더라도 그 전통 속에서 몇몇 부흥운동가들 즉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나 토레이(R. A. Torrey)같은 사람들은 신자들에게 권능을 부여해 주는 이런 이차적(二次的)인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심프슨이 보완한 성화론은 하나님의 성회 신학의 기초

한편, 이러한 권능이 부여된다 하더라도, 성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는데 그 중심인물로는 장로교인이었던 심프슨(A. B. Simpson)을 들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과 선교사 연맹'(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을 창설하였고, 성령세례를 강조하였으며, 하나님의 성회 신학의 초석을 놓았던 인물이 되었다.
<그리스도인과 선교사 연맹 창설자 A.B.심프슨>
그는 오순절 성령세례를 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오순절 신학의 초석을 놓았던 사람이다

영국의 케직사경회

1875년에 영국에서 시작된 케직(Keswick)사경회(査經會)도 미국의 오순절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케직의 교사들은 성령세례야말로 '성령충만'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지속적인 승리의 삶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성령세례가 '무죄한 완전'을 가져온다는 사상을 웨슬리주의자 보다 더 선호하였다.

독일에서의 치유운동

19세기 들어 의학이 점차 발전하였지만 심각한 질병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당시 교회는 육체적인 치유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권능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육체적 치유를 주장하는 교회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19세기에 독일에서 병자를 위한 기도를 부각시킨 사람들이 있는데 도로테아 트루델(Dorothea Trudel)과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Johann Christoph Blumhardt)와 오토 슈토크마이어(Otto Stockmayer)가 미국에서 더 관심을 끌게 되었다. 죄로부터의 즉각적인 정화 또는 영적인 권능의 부여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던 부흥사들에 의해 믿음을 통한 직접적인 치유에 대한 긍정적인 환경이 조성되었다.

미국에서의 치유운동의 확산

성령 세례는 많은 신자들에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가졌던 영적인 관계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었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한층 더 높은 성결의 삶은 타락이 갖다주는 물리적·정신적 영향을 없애줌으로써 신자들로 하여금 질병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과 권능을 갖게 해 주었다. 찰스 컬리스(Charles C. Cullis)와 심슨(A. B. Simpson), 고든(A. J. Gordon)과 케리 주드 몽고메리(Carrie Judd Montgomery), 마리아 우드워드 이터(Maria B. Woodworth Etter)와 존 알렉산더 도뷔(John Alexander Dowie)와 같은 치유사역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근거를 신약성경의 치유에 대한 약속은 물론 이사야서 53장 4절에서 5절 말씀에다 두었다. 그리스도는 '죄를 담당(sin bearer)'하실 뿐만 아니라 '질병도 담당(sickness bearer)'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약속을(출 15 : 26) 믿으며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의학적인 도움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만일 그들이 의학의 도움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신앙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순절 성령운동의 방향 정립

미국을 휩쓸고 있던 '그리스도인의 완전성'을 추구하던 성결운동에 심프슨이 주창한 '점진적인 성화론'이 폭넓게 지지되면서 영적운동에 일대 방향전환이 왔는데 그것은 구령(救靈)을 향한 선교운동으로 나타났고 교회는 그같은 영적사업에 매진할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源泉)인 '오순절 은사은동' 에 주력하게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교회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초대 교회와 함께 마감되어졌다고 가르친 반면에 오순절주의자들은 치유 및 방언 그리고 다른 은사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이제 오순절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신앙 외에는 신약교회가 성결과 권능 속에서 재건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하딘 어윈의 삼차적(三次的) 은혜와 불타오르는 사랑의 세례

그러나 1895년에 급진적인 웨슬리 성결운동의 설교자였던 벤자민 하딘 어윈(Benjamin Hardin Irwin)이 은혜의 세가지 역사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자 말썽의 소지가 드러나게 되었다. 어윈에게 있어서 이차적(二次的) 은혜는 성화를 일으키는 것이지만 세번째 은혜는 '불타오르는 사랑의 세례(baptism of burning love)'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성결운동의 주류측에서 이러한 '세 번째 은혜'에 대한 주장을 이단으로 정죄하게 되었고 "두 번째 은혜인가? 세 번째 은혜인가?"라는 격론이 일게 되었다. 그것의 진위(眞僞) 여부를 떠나서 어윈의 '세 번째 은혜'에 대한 견해는 오순절운동에 있어서 '기독교인의 봉사'라는 새로운 차원에 눈을 돌리도록 해준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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