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성회 성립

하나님의 성회의 성립

1901년 1월 1일, 벧엘성서신학교의 새아침

1901년은 개신교사(改新敎史)를 일신(一新)하는 신기원의 해라 일컬을 수 있다. 당시 감리교 부흥사이었던 파함(Charles. F. Parham)목사가 1900년 10월에 칸사스주 토페카시에 벧엘성서신학교를 설립하여 40여명의 학생들에게 그리스도는 구세주이며 신유의 주님이신 것을 가르쳤다. 이 학교의 특징은 교재를 오직 성경만으로 사용하였는데 때마침 그들은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 해 마지막 무렵에 교장인 파함은 인근에 있는 도시로 천막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3일간 학교를 떠나면서 학생들에게 “성령세례의 증거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작성케 하였다. 런데 교장이 학교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학생들은 이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성령세례의 성경적 증거가 방언'이라는 결론이었다. 물론 교회사를 보면 방언을 말했다는 기사가 없지는 않으나 그들은 다만 방언을 은사로만 인식하였을뿐 성령세례의 증거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신학생들은 성령세례의 증거가 방언임을 굳게 믿고 3일간 밤낮을 쉬지 않고 성령세례를 구했으며 드디어 1901년 1월 1일 새벽 여명이 밝아올 무렵, 오즈맨(Agnes Ozman)이라는 여학생이 맨먼저 방언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다른 신학생들도 성령을 받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이 생겨 열심히 기도하던 중 한사람 한 사람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충동이 생겨 길거리로 뛰쳐나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고 학생들의 손으로 세 개의 새교회를 세우게 되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성회의 효시(嚆矢)이며 20세기 성령운동의 시발인 것이다.

20세기 오순절 성령운동의 중핵(中核) 하나님의 성회의 탄생

말씀과 증인(Word and Witness)지(誌)의 편집인이었던 벨(E. N. Bell)목사는 1913년 12월 20일자 지면(誌面)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in Christ)들과 오순절적 성도의 총회 소집에 대한 광고를 게재하여 1914년 4월 2일부터 12일까지 알칸사스주 핫 스프링(Hot Spring)시에서 열릴 것을 알렸다. 그들이 총회를 개최하게 된 목적은 성령받은 오순절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연합하고 협력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반목·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전진을 위하여 협력하고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려 하였다(엡 4:3). 말씀과 증언지에 실렸던 하나님의 성회소집 공고는 다음과 같다.

아주사 거리 부흥운동

20세기 벽두에 성령 세례를 허락하신 것은 '말세에 늦은 비 성령을 부어 주시리라'는 예언이 적중한 것이니(욜 2:23), 초대교회에 이른 비가 내린 후 19세기까지는 별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20세기가 밝아오는 1월 1일 새벽에 성령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이야말로 20세기가 늦은 비 성령의 시대이며 또한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시대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20세기 성령운동의 진원지 토페카시에서 발생한 이 불길은 들불처럼 퍼져나가 그 해에 칸사스, 오크라호마, 미조리, 텍사스주에 퍼지게 되었으며, 1906년에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엔젤레스에서 강한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파함은 1905년에 휴스톤에 또 하나의 신학교를 설립하여 복음적인 전도자를 양성하였는데, 윌리암 셰이모어(William J. Seymour)가 성령세례를 받아 오순절적인 전도자로 전환되었으나 그가 속해있는 교단에서는 설교할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러자 그는 어떤 굴레에 매여 복음을 바로 전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복음 그대로를 설파함이 옳은 것이라 믿어 1906년 로스엔젤레스 아주사(Azuza)거리에서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저 유명한 1906년의 아주사의 성령운동이다. 부흥회는 1주간이나 또는 1∼2개월에 끝나는 집회가 아니었으며, 7년간이나 계속된 새로운 차원의 부흥회였으니 이 집회는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으며 찬양이나 광고도 하지 않았고 폐회선언도 없었다. 만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찬미하며 기도하고 설교하며 매일 밤낮 쉬지않고 모이고 또 모여 은혜를 받았다. 날마다 성령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났고 그 결과 이 소문이 사방에 퍼져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성령을 받았으며, 그들은 다시 제 고장으로 돌아가서 성령운동을 일으켰다. 캘리포니아, 시카고, 캐나다, 뉴욕, 죠지아, 프로리다 등지에서 오순절운동이 속속 전개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무렵에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한국 등지에서도 성령의 강한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평양에서 일어났던 1907년도의 부흥 동을 그 실례로 들 수 있겠다.

총회일시 : 1914년 4월 2일 - 12일
장 소 : 알칸사스주의 핫 스프링(hot spring)
회의성격 :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과 오순절적 성도들의 총회(convention)

미 하나님 성회의 창립총회의 목적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었다.
첫째, 분열과 불화를 피하기 위해 가르침과 설교의 어떤 표준을 설정할 필요성과 오순절 백성들이 여러 이름 아래서 일하는 것을 피하고 하나의 이름을 선택할 필요성이 있다.
둘째, 하나님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어떤 관례를 제정하여야 할 필요성과 분열하는 대신 하나되고 세우는 일에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셋째, 해외선교의 필요성을 잘 이해하며 효과적인 해외선교의 의미와 방법을 연구하는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
넷째, 교회재산의 보존과 교회 사업수행을 위한 각 주(State)와 전국적인 법률을 제정하여 오순절 역사의 다른 분열을 없애기 위해 하나의 이름으로 법인체를 설립할 것을 제의한다.
다섯째,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 하신 주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을 수행하기 위해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설립과 문서출판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러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1914년 4월 2일, 미국 20개 주에서 300명 이상의 대의원(Deligate)들이 알칸사스주의 핫 스프링에 모였다. 총회장소는 핫 스프링시의 중심가(Central Avenue) 200번지에 위치한 오래된 그랜드 오페라 하우스이었다. 그곳에는 미국의 20개주에서 모여온 총대들 뿐 아니라 해외에서 참석한 대표들도 있었다. 제일 연소한 사람은 18세인 랄프 리그스(Ralph Rigs)라는 청년이었는데, 그는 1953∼1959년까지 미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이 되어 교단 발전에 지대한 공을 남기게 된다.

창립총회의 대의원 명부에는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Johnnesburg)에서 온 레이크(John. G. Lake)라는 오순절 신앙인의 이름도 기재되어 있으며, 두 사람의 주요한 잡지사의 편집인도 참석하였는데「말씀과 증언」(Word and Witness, 알칸사스주의 Malbarn에서 발행된 잡지)의 편집인 벨(E. N. Bell)목사와 「크리스챤 복음지」(Christian Evangel, 인디아나주의 Plainfield에서 발행된 잡지)의 편집인인 플라워(J. R. Flower)목사 등이다. 또한 후에(1915∼1919, 1923∼1925) 총회장이 되어 교단발전에 크게 기여한 웰취(J. W. Welch, 칸사스주의 Baxter Springs교회의 담임)목사와 1925∼1929년까지 총회장을 지낸 갯슨(W. T. Gatson, 오클라호마교회의 목사)도 참석했으며 멀리 이집트에서 온 크러치(J. Crouch)목사도 있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회는 탄생 때부터 국제적인 규모로 출발하였다. 총회 개회설교는 핀슨(M. M. Pinson)목사가 하였는데 사도행전 15장을 본문으로 하여 교리적인 몇가지 문제와 칭의(Justification)에 대해 말씀을 증거하였다. 이어서 사흘동안 은혜받는 성회가 계속 되었으며 그 성회를 통해 성령충만 받은 성도들이 핫 스프링 시가지로 나가 질서정연하게 가두행렬(Parade)을 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미국의 하나님의 성회 총회는 총회가 개최되는 도시 전체를 축제의 장(場)으로 바꾸는 놀라운 사건이 된다. 사무총회는 4월 6일부터 시작되었는데 벨(E. N. Bell)목사가 임시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플라워(J. R. Flower)가 임시서기로 선출되었다.

그 창립총회의 중요한 결의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교단 명칭을 하나님의 성회(The Assemblies of God)라 한다. 개교회 명칭은 ○○○ Assembly of God으로 부르기로 한다.
2. 총회(The General Gouncil)는 회무를 처리하는 모임이고 정치제도는 회중적 합의제(Congregational Agreement)를 채택하여 개교회의 자율성을 중요시 한다. (즉 감독제도나 중앙집권제를 배제하고 개교회 중심제를 채택한 것이다)
3. 총회본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12명의 실행위원(Executive Presbytery)을 두기로 하고 이를 선출한다.
4. 총회장에는 벨(E. N. Bell)목사를 선출하고 총무에는 플라워(J. R. Flower)목사를 선출한다.
5. 「말씀과 증언」과 「오순절 복음」(Pentecostal Evangel)을 교단지(敎團誌)로 인준한다.
6. 핀드레이에 있는 신학교를 교단 신학교로 인준했으며 벨목사와 플라워목사를 교수로 인준한다.

창립총회에서 초대 실행위원으로 선출된 12명의 목사는 다음과 같다.
1. E. N. Bell(아칸사주의 Malvern시)
2. A. P. Collins(텍사스주의 Fort Worth시)
3. R. L. Erickson(이리노이주 Chicago시)
4. J. R. Flower(인디아나주 Indianapolis시)
5. C. B. Fockler(위스컨신주 Milwaukee시)
6. H. A. Goss(알칸스사주 Hot Springs시)
7. D. W. Kerr(오하이오주 Cleveland시)
8. T. K. Leonard(오하이오주 Findlay시)
9. D. C. Opperman(텍사스주 Huston시)
10. M. M. Pinson(아리조나주 Phoenix시)
11. J. C. Sinclair(이리노이주 Chicago시)
12. J. W. Welch(칸사스주 Baxter Springs시)

이상의 열두 사람이 미(美)하나님의 성회 초창기의 중요 인물들이었으며 그들은 교단발전을 위해 크게 헌신한 충성스러운 주님의 일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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